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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쿨  @yakult_18

 

나뭇잎은 부서지는 햇살을 잔뜩 머금어 저의 몸을 빛냈다. 흩어지고, 부딪히며, 넘실거리는 녹빛 물결이 하늘에서 어울렸다. 그 틈새로 들어오는 빛줄기는 제 자리에 가만히 있지 못했다. 불안정하게 흔들리지만 산만하진 않았다. 다만 눈이 받아들이는 양은 한계가 있었기에 눈꺼풀이 절로 방패 역을 자처할 뿐. 빛과 대비되는 그림자들은 수풀 사이로 어지러운 흔적들을 마구 남겨놓았다.

 

가만히 누워있자니 지루하기 그지없고, 그렇다고 무언가를 하러 가기엔 아직 기다림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바람은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것은 한결 부드러운 손길로 정수리를 가벼이 헤집어놓고 지나갔다. 그 위로 자라난 황금 숲은 워낙 짤막하니 그토록 심하게 어지럽혀지진 않았다. 이 청량함을 조금 더 만끽하고 싶었으나 저 멀리 시야에 드리우는 인영에 상체를 일으켰다. 아쉽지만 슬슬 일어나야할 때다. 입을 다시며 모자를 썼다.

 

인영은 점점 가까워지더니 그저 형태만 보이던 것이 선명하게 바뀌었다. 바람은 나뿐만이 아니라 흑요석 마냥 선명하고도 짙은, 검은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갔다. 저것도 나름 긴 편에 속한다면 속할 것이다. 머리카락 하나하나가 어딘가에 꽂아놓은 깃발처럼 흔들렸으니.

 

에이스, 좀 늦었네. 장난스레 웃으며 농담을 던지니 주근깨가 수놓인 안면이 씰룩였다. 무슨 소리, 항상 이 시간에 왔다고. 인정하기 싫었는지 맞받아치는 목소리가 반가웠다. 그런가. 바보처럼 이를 드러내며 웃어보였다. 무언가 '기쁨' 같은 감정이 격하게 느껴졌지만 원인을 알진 못했다. 굳이 찾을 이유 또한 느끼지 못했지만.

 

우린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냥감부터 정했다. 최근 큰 사냥감을 찾지 못해 몸도 풀 겸, 가볍게 멧돼지를 잡기로 결정했다. 간단하고도 빠르게 결정을 내리고 나니 머리가 훨 말끔해진 기분이었다. 집만큼이나 익숙한 이 숲은 우리에겐 놀이터나 다름이 없었으니 목표물을 찾아다니기 수월했다.

 

요즘 영 돌아다니지 않았음에도 사냥감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녀석은 입술을 부르르 떨며 요상한 소리로 고막을 자극했다. 울음소리를 들으니 꽤나 거친 녀석 같았지만 우리가 늘 상대해오던 자식들에게 비하면 귀여운 편에 속했다. 녀석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투지를 보였다. 우리가 바라는 바라고. 녀석이 앞다리든 뒷다리든 열심히 걷어차려 노력해봤자 헛수고였다. 우린 서로가 눈을 맞추며 씨익 웃어보였다. 하나, 둘ㅡ! 동시에 녀석의 머리통을 내려친 쇠파이프는 말짱했다. 그저 녀석의 눈깔이 달팽이집처럼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었다.

 

평소처럼 흔하디흔했던 사투를 끝내고 숲을 조금 더 쏘다녔다. 덕분에 하늘은 발간 해를 모닥불 삼아 따스함을 취하고 있었다.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야. 그 녀석들, 기다리고 있으니 가봐야겠지. 그 녀석들이라 함은 에이스가 이따금씩 거론했었던, 다단이란 자를 포함한 산적들일 것이다. 에이스는 늘 그들에게 사냥감을 던져주곤 했으니 그리 낯선 일은 아니었다. 다만 왠지 모를 이유로 식은땀이 흐르고 가슴이 콩닥거렸다. 보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에이스, 갈 거야?

당연하지.

안 가면 안 돼?

 

무슨 소리야. 에이스는 미간을 좁히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나도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지금 보내면 안 될 것 같아. 어쩐지 그런 기분이 강하게 들어 에이스의 팔을 붙잡았다. 전엔 없던 감정이 방문하니 문득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를 악물고 에이스를 곧게 쳐다보는 찰나, 옅은 소리가 눈치 없이 방해를 선사했다. 스륵, 수풀이 일그러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소리의 주인을 찾으려 시선을 급하게 움직여보았으나 에이스가 더 빨랐다. 난 또, 더 위험한 놈인 줄 알았잖아. 에이스 발아래 짓밟힌 채로 꿈틀거리는 생명체는 밧줄 같은 뱀이었다. 제 몸을 빼내려 아등바등 하지만 에이스가 더 우위에 있었는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딱히 식량도 위협도 되지 않을 녀석이라 생각한 에이스는 발을 허공으로 들어올렸다. 이때다 싶어 냅다 꽁무니를 빼는 뱀에게 계속 시선을 줄 이유는 없었다. 나도, 에이스도. 그제야 에이스의 동공이 나만을 가득 머금을 수 있었다.

 

안 가면 안 되냐고 물었어.

왜 그래, 사보?

몰라. 그냥 지금 널 보내면 안 될 것 같아.

 

갸웃거리던 에이스가 내게서 심각한 두려움과 걱정을 느낀 것인지 진지한 얼굴로 바꾸더니 이내 피식 바람 빠지듯 웃어버리고 만다. 어쩔 수 없네. 그 웃음에 스며있는 불안한 기운이 진심으로 착각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런 희망을 품었다. 뭐가 어쩔 수 없는데? 묻고 싶었지만 질문을 던지면 안 될 것만 같아 입을 다물었다. 에이스는 나의 양 어깨를 굳세게 쥐었다. 평소보다 더 힘이 들어가 있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에이스가 웃어 보이는 걸 단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에 눈동자가 바쁘게 굴렀다. 에이스의 입술이 움직였다. 느리고도, 빠르게. 그렇게 목소리가 내게로 와 닿았다.

 

난 항상 네 곁에 있어.

 

화악ㅡ, 물벼락을 맞은 듯 번쩍 떠지는 눈은 아예 다른 장면을 비추고 있었다. 방금까지 훤히 뚫려있던 하늘은 온데간데없었다. 고로 둥실거리던 구름도, 풀내음도 없다. 게다가 또 없는 건……. 주먹을 천천히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손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지금 느껴지는 촉각이, 촉각이 아닌 듯 착각마저 들었다. 오히려 지금의 감각이 생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정말로 네 말이 맞다면 확신을 가져도 되는 걸까? 팔에 힘을 풀어버리니 손바닥이 시야를 완전히 가려버렸다. 너란 녀석은 정말……. 손가락 틈새론 막연하게 막혀있는 인조적인 구조물뿐. 그것이 너무나도 낯설어 결국엔 눈을 감아버렸다. 혼잡하게 엉킨 감정의 선들이 정리되질 않는다.

 

어느 쪽이든 갑자기 나타나는 건 반칙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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