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가온 @choigaon0
나는 숨을 쉬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다. 온 몸이 저릿거려 왔지만 정신만은 아직 깨어있었다. 두고 온 것이 너무 많았다. 정말, 너무 많았다. 숨만 겨우겨우 쉴 수 있는 상황에서 나는 졸음을 느꼈다. 회상하기도 끔찍한 졸음. 느릿하게 내 뇌를 지배해 오는 졸음에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것은 눈물을 흘리느라 내려가는 나의 입꼬리를 올리기 위한 일이기도 했다.
"사랑해줘서, 고마워."
그래. 사실 싫었다. 사실 내 본심은 그게 아니었다. 살려줘. 누구든지. 제발.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살고 싶었다. 앞으로의 일어날 사건들에, 당신들의 미래에. 내가 함께 있기를 바랐었다. 아침을 알리는 태양이 바다 위로 올라 올 때의 아름다움을 나의 가족들과 보고 싶었다. 삿치가 해주던 아침을 나의 형제들에게 맛보여주고 싶었다. 앞으로 계속해서, 모두와 웃고, 울고를 함께 하고 싶었다.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은 것은 바로, 지금. 잠이, 지독하게 흘러내렸다. 머리카락 끝부터 내 이마를 적셔오는 피곤함. 그 전장에서 부활했었던 나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순수하게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어릴 적이 보였다. 아주 어릴 적. 내가 인지하지도 못했던 내 삶의 일부분이 스쳐지나가듯, 나를 덮쳤다. 뛰어 놀던 그 때. 나의 옆에 있던 형제들. 처음으로 바다 위를 홀로 항해하던 그 날 밤, 바닷바람. 그리고 배 위에서 만난 가족들. 내 머릿속으로 섬길 수 있던 아버지가 생긴 그 때. 임펠다운. 처형장. 그리고—!
나는 눈을 감았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다. 이제는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머리는 새카맣게 변질되어 나는 녹아내려 액체가 되는 듯 했다. 그래. 바다 속으로 떠나는 듯 했다. 나는 그제야 받아들였다. 나의 죽음을.
순수한 죽음에게로 향하는 기분은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내 몸이 잠들기 직전까지 너무나도 괴로웠기 때문일까. 마음만은 행복했지만 육체는 소리 지르고 있었으니까. 나는 푸른 바다 속을 헤엄쳤다. 바다를 헤엄치는 것은 어릴 때 이후 오랜만이었다. 차가운 바닷물 속 더욱 차가운 나의 몸을, 깊은 바다에서 울렁이며 나에게 다가오는 파도에 맡기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내 아버지는 거기 있을까. 내 어머니도 거기 있겠지. 흰수염……그래, 내 아버지. 그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사보, 그래! 사보도 거기서 나를 보며 웃을 것이었다. 삿치는 당연히, 나를 보며 그 특유의 미소를 잔뜩 지어낼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사보를 만난다면 사보는 어린 아이겠지. 다 큰 나를 보며 어색하게 웃을 거야. 흰수염, 나의 아버지도 나를 쓰다듬으며 수고했다고 말하겠지. 어머니, 아버지……조금 어색할 거야. 처음이니. 그렇지만 괜찮을 거야. 삿치도 나에게 웃으며 장난스럽게 헤드락을 걸겠지.
그러니까, 괜찮아.
조금 많이 울렁거리지만. 마치 어느 아득한 곳으로 사라지는 기분이지만. 괜찮다. 괜찮아. 나는 더 이상 헤엄을 치지 않았다. 몸은 파도가 맡기는 대로 흘려보내었다.
내가 기다리면 되는 거야. 나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사람처럼. 그리고 그들처럼, 지금 세상을 내다보며 추억하겠지. 그러니까, 나는 괜찮다.